영어 단어 몇 개를 알아야 일상 회화가 될까 — 숫자로 보는 어휘 빈도
상위 1,000단어가 구어의 85%를 덮는다는 통계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통계가 알려 주지 않는 나머지 15%가 문장마다 대화를 멈춰 세운다는 점입니다.
질문을 조금 바꿔야 답이 나옵니다
"영어 단어 몇 개를 알아야 하나요?" 학습자가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자, 가장 답하기 곤란한 질문입니다. 3,000개라는 답도 10,000개라는 답도 어딘가에서는 맞고 어딘가에서는 틀립니다.
답이 갈리는 이유는 "안다"의 기준이 제각각이어서입니다. 읽다가 만나면 뜻이 떠오르는 수준과, 말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수준은 보통 몇 배 차이가 납니다. 앞의 것을 수용 어휘, 뒤의 것을 생산 어휘라고 부릅니다.
그래도 출발점으로 쓸 만한 숫자는 있습니다. 어휘 빈도 연구가 반복해서 보여 준 분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 숫자를 보고, 그다음에 그 숫자가 왜 실전에서 배신하는지를 보겠습니다.
빈도 분포는 상상보다 훨씬 기울어져 있습니다
영어 단어는 사용 빈도가 고르게 퍼져 있지 않습니다. 극소수 단어가 압도적으로 자주 나오고 나머지는 아주 가끔 나옵니다. the, be, to, of, and 같은 최상위 몇 단어만으로도 일반적인 영어 텍스트의 꽤 큰 몫이 채워집니다.
어휘 빈도 연구에서 널리 인용되는 대략의 그림은 이렇습니다. 빈도 상위 1,000개 단어군이 일상 구어의 85% 안팎을 덮고, 2,000개까지 넓히면 90%대 초반에 이릅니다. 3,000개면 95% 근처, 5,000개를 넘어가면 98%에 가까워집니다.
다만 이 수치는 어떤 말뭉치를 재느냐에 따라 몇 퍼센트포인트씩 움직입니다. 격식 있는 글보다 일상 대화에서 커버리지가 높게 나오고, 전문 분야 텍스트에서는 뚝 떨어집니다. 소수점까지 믿을 숫자가 아니라 곡선의 모양을 보여 주는 숫자로 읽어야 합니다.
"단어군"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work, works, worked, working, worker를 각각 세는 것이 아니라 한 묶음으로 셉니다. 그래서 1,000단어군은 실제 낱말 형태로 따지면 그 두세 배에 가깝습니다.
곡선의 모양이 곧 전략입니다
단계별로 세워 보면 100단어군이 구어의 절반가량, 1,000단어군이 85% 안팎, 2,000단어군이 90%대 초반, 3,000단어군이 95% 근처, 5,000단어군이 98% 근처입니다. 처음 1,000개는 투자 대비 효과가 압도적인 반면, 3,000에서 5,000으로 가는 2,000개는 겨우 3%포인트를 더 얻습니다. 그러니 초·중급 구간에서 "단어를 더 많이"는 대체로 옳은 처방이되, 그것은 첫 2,000~3,000개에 한해서입니다. 그 뒤에는 성격이 다른 문제가 기다립니다.
남은 5~10%가 문장마다 걸립니다
95%라는 숫자는 안심되게 들립니다. 계산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커버리지 95%는 스무 단어에 하나꼴로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일상 대화 문장이 대략 열 단어 안팎이니, 두 문장에 한 번씩 구멍이 생깁니다. 대화 상대가 세 문장을 말하는 동안 한 번 이상 걸린다는 이야기죠.
읽기 연구에서 자주 인용되는 기준은 98%입니다. 사전 없이 편하게 읽으려면 텍스트의 98%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98%라도 쉰 단어에 하나는 모릅니다.
그런데 읽기와 듣기는 조건이 다릅니다. 읽기는 멈춰서 앞뒤를 다시 볼 수 있지만 대화는 상대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같은 커버리지라도 말하기·듣기에서 체감 난이도가 훨씬 높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1,000단어면 85%"라는 통계는 절반만 맞습니다. 85%를 안다는 것은 문장의 뼈대는 잡히지만 정작 그 문장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놓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빠지는 단어가 대개 문장의 핵심 명사이기 때문입니다.
빠지는 단어는 어려운 단어가 아닙니다
빈도 목록 바깥의 단어를 상상하면 보통 거창한 추상어를 떠올립니다.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막히는 단어는 sink(싱크대), shelf(선반), receipt(영수증), stapler(스테이플러), sleeve(소매), leash(개 목줄)처럼 아주 평범한 사물의 이름입니다.
이런 단어들은 전체 빈도로는 낮지만 특정 상황에 들어가면 거의 매번 등장합니다. 병원에서는 prescription과 symptom이, 집을 구할 때는 deposit과 lease가 빠지지 않습니다. 전체 빈도 목록은 이런 국지적 밀도를 잡아내지 못합니다.
이미 아는 단어의 다른 얼굴
또 하나 빠지는 것이 이미 아는 단어의 새 용법입니다. run은 빈도 상위 1,000위 안에 드는 흔한 단어지만, run a business(사업을 운영하다), run out of(다 떨어지다), run into(우연히 만나다)로 쓰이면 사실상 새로 배워야 하는 표현입니다.
get, take, make, put처럼 짧고 흔한 동사일수록 이런 얼굴이 많습니다. 어휘 목록에서는 이미 체크한 단어라 진도에 잡히지 않고, 그래서 오래 방치됩니다.
새 단어보다 아는 단어의 새 용법이 실제로는 더 큰 벽입니다. 모르는 단어는 모른다는 자각이라도 있지만, 이쪽은 안다고 착각한 채로 지나가니까요.
그래서 순서는 이렇게 잡습니다
먼저 빈도 상위 1,000단어군은 목록을 구해 빠르게 훑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만 갈라내세요. 대부분 이미 알고 있어 몇십 개만 채우면 됩니다. 여기에 몇 달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다음 2,000~3,000 구간은 빈도순 목록으로 정직하게 채웁니다. 하루 5개씩만 해도 1년이면 1,800개고, 대개 이 구간에서 "말이 트인다"는 감각이 생깁니다.
그 이후에는 전체 빈도를 버리고 내 빈도로 갈아타세요. 내 직업, 내 취미, 내가 자주 놓이는 상황에서 반복되는 단어를 직접 수집합니다. 회의록에 매번 나오는 단어,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계속 들리는 단어가 그 목록입니다. 이 시점부터는 남이 만든 목록이 내 대화를 도와주지 못합니다.
지금 몇 개쯤 아는지 재는 법
어휘량은 세는 것이 아니라 표본으로 추정합니다. 종이 사전이 있다면 무작위로 20쪽을 펼쳐 각 쪽의 첫 표제어를 확인하세요. 20개 중 몇 개를 아는지 센 뒤 그 비율에 사전 전체 표제어 수를 곱하면 대략적인 규모가 나옵니다.
표본이 20개뿐이라 오차가 큽니다. 40쪽, 60쪽으로 늘릴수록 안정되지만, 어차피 자릿수를 확인하는 용도입니다. 3,000인지 8,000인지만 알면 충분합니다.
더 실용적인 방법은 텍스트로 재는 것입니다. 관심 있는 영어 기사 한 편을 골라 모르는 단어에 표시해 보세요. 100단어당 두 개 이하라면 혼자 읽기에 적당한 난이도이고, 다섯 개를 넘으면 지금 수준보다 위입니다.
숫자에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어휘량은 목표가 아니라 현재 위치를 알려 주는 눈금입니다. 정작 중요한 결정은 따로 있습니다. 다음에 채울 1,000개를 목록의 순서로 고를 것인가, 내 생활의 순서로 고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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