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자주 틀리는 영어 발음 10가지 — 무엇이 어디서 새는가
fan과 pan이 같은 소리가 되는 순간 대화는 멈춥니다. 한국어에 없는 영어 소리를 무엇으로 대체하고 있는지, r·l부터 -ed 어미까지 열 가지를 입 모양과 최소대립쌍으로 짚었습니다.
발음이 나쁜 게 아니라 "바꿔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영어 발음 이야기가 나오면 흔히 "혀가 짧아서", "구강 구조가 달라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근거는 희박합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훨씬 단순하고, 훨씬 고치기 쉽습니다. 한국어에 없는 소리를 만나면 뇌가 가장 가까운 한국어 소리를 자동으로 갖다 붙입니다. f를 만나면 ㅍ, v를 만나면 ㅂ, th를 만나면 ㅅ이나 ㄷ을 꺼내 쓰는 식이죠. 문제는 소리가 어색해지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두 단어가 같은 소리가 되어 버립니다. fan과 pan을 둘 다 "팬"으로 발음하면 듣는 사람은 문맥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고, 문맥이 도와주지 못하는 순간 대화가 멈춥니다.
그래서 아래 열 가지는 "예쁘게 발음하는 법"이 아니라 의미가 무너지는 자리를 순서대로 짚은 목록입니다. 항목마다 어떤 한국어 소리로 대체되는지, 왜 통하지 않는지, 입과 혀를 어디에 두는지, 그리고 확인용 최소대립쌍(minimal pair)을 붙였습니다.
1·2 — r과 l: 혀끝을 어디에도 대지 않는 소리
한국어 ㄹ은 하나지만 영어는 r과 l 두 개입니다. 한국인은 둘 다 ㄹ로 처리합니다. rice와 lice, right와 light, pray와 play, collect와 correct가 전부 한 덩어리가 되는 이유입니다. 특히 rice(쌀)와 lice(머릿니)는 식당에서 실제로 오해가 생기는 조합입니다.
l은 혀끝을 윗니 바로 뒤 잇몸에 확실히 붙이고 소리를 혀 양옆으로 흘려보냅니다. 한국어 ㄹ보다 훨씬 오래, 끝까지 붙여 두는 것이 요령입니다.
반대로 r은 혀끝이 입안 어디에도 닿지 않는 것이 기본입니다. 혀를 뒤로 살짝 오므리거나 가운데를 불룩하게 만든 채 띄워 두고, 입술을 조금 앞으로 내밉니다. 혀끝이 잇몸을 툭 치면 그 순간 한국어 ㄹ이나 l 쪽으로 넘어갑니다. 혀를 어디에도 대지 않는다는 감각 하나만 잡으면 됩니다.
연습은 최소대립쌍을 소리 내어 번갈아 읽는 방식이 가장 빠릅니다. rice / lice, road / load, wrong / long, fry / fly, grass / glass, arrive / alive를 각각 다섯 번씩 왕복해 보세요. 거울을 보며 l에서 혀끝이 보이는지, r에서 안 보이는지 확인하면 스스로 채점이 됩니다.
3·4 — f/p와 v/b: 윗니가 아랫입술에 닿는가
f와 v는 윗니를 아랫입술에 살짝 대고 그 틈으로 공기를 내보내는 소리입니다. 한국어에는 이 자리가 아예 없어서 f는 ㅍ으로, v는 ㅂ으로 바뀝니다. 그 결과 coffee가 "커피"가 되고 very가 "베리"가 됩니다.
차이가 드러나는 짝은 이렇습니다. fan / pan, fine / pine, coffee / copy, leaf / leap. v 쪽은 very / berry, vest / best, vote / boat, van / ban입니다. "I have a boat"와 "I have a vote"는 문맥으로도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확인 방법은 물리적으로 아주 단순합니다. 윗니가 아랫입술에 닿았는지만 보면 됩니다. f는 닿은 상태에서 바람만 새고, v는 같은 자리에서 목이 함께 울립니다. 손가락을 목에 대고 번갈아 발음해 보세요. 진동이 없으면 f, 있으면 v입니다.
여기까지가 "한국어에 자리가 없는" 소리들입니다
앞의 네 항목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어 자음 목록에 대응하는 칸이 아예 비어 있다는 것. 그래서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참고할 모델이 없어서 틀립니다. 뒤집어 말하면 입과 혀의 위치를 한 번 정확히 배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빠르게 붙습니다. 다음 항목도 같은 성격입니다.
5 — th: 혀끝을 이 사이로 내미는 두 소리
th는 무성음(think, thank, three)과 유성음(this, they, mother) 두 가지입니다. 한국인은 앞의 것을 ㅅ으로, 뒤의 것을 ㄷ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think가 sink가 되고 they가 day가 됩니다.
입 모양은 하나뿐이라 오히려 쉽습니다. 혀끝을 윗니와 아랫니 사이로 살짝 내밀고 그 상태로 공기를 내보냅니다. 혀가 이 사이에서 보여야 정상입니다. 거기서 목이 울리지 않으면 think의 th, 울리면 this의 th입니다.
확인용 짝은 무성 쪽이 think / sink, thank / sank, thin / sin이고 유성 쪽은 they / day, breathe / breeze입니다. th를 f로 바꿔 버리는 습관이 있다면 three / free도 함께 연습하세요. 같은 th지만 대체하는 소리가 달라 헷갈리는 방향이 다릅니다.
다만 month, sixth, clothes처럼 th가 다른 자음과 붙는 단어는 원어민도 빠르게 흘립니다. 완벽하게 발음하려 애쓰기보다 혀가 이 사이에 한 번 다녀오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6 — 끼어드는 "으": strike가 다섯 음절이 되는 문제
한국어는 음절이 대체로 "자음+모음" 단위로 짜입니다. 그래서 영어 자음이 연달아 나오면 사이사이에 "으"를 넣어 버립니다. strike는 영어로 한 음절인데 한국어식으로 읽으면 "스-트-라-이-크" 다섯 음절이 됩니다. 음절 수가 다섯 배로 늘어나면 원어민의 귀에는 아예 다른 단어입니다.
음절 수를 손가락으로 세면서 읽으면 바로 잡힙니다. desk, text, asked, milk, film, world를 각각 손가락 하나만 접으며 읽어 보세요. 두 개 이상 접히면 모음이 끼어든 것입니다. 자음이 셋 이상 뭉친 sixths나 strengths는 처음엔 마지막 자음 하나를 흘려도 됩니다. 모음을 넣는 것보다 흘리는 쪽이 훨씬 알아듣기 쉽습니다.
7·8·9 — 어말 자음과, 문법을 나르는 두 어미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문제가 어말 자음입니다. 영어의 어말 파열음 뒤에는 모음이 붙지 않습니다. good을 "구드"로, bag을 "백그"로 발음하면 없는 음절이 하나 더 생깁니다. 어말 자음은 소리를 내려다 만 것처럼 짧게 끊는 편이 훨씬 가깝습니다.
이 습관이 문법과 만나면 손해가 커집니다. 과거형 -ed는 세 가지로 소리 납니다. 무성음 뒤에서는 /t/(walked는 "웍트"), 유성음 뒤에서는 /d/(played는 "플레이드"), 그리고 t나 d로 끝나는 동사 뒤에서만 /ɪd/(wanted, needed)입니다.
한국인은 이 세 번째를 모든 동사에 적용해 walked를 "워크드", asked를 "애스크드"처럼 두 음절로 늘립니다. 규칙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자음 뒤에 모음을 붙이는 습관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복수·3인칭 -s도 구조가 같습니다. 무성음 뒤는 /s/(books, cats), 유성음 뒤는 /z/(dogs, jobs, days), s·z·sh·ch·ge로 끝나면 /ɪz/(buses, watches, changes)입니다. 다만 여기서 더 흔한 문제는 발음이 아니라 누락입니다. "He work here"처럼 -s가 사라지면 상대는 뜻보다 문법 오류를 먼저 알아챕니다.
두 어미 모두 소리가 작아서 연습을 건너뛰기 쉽습니다. 그런데 시제와 수를 나르는 신호는 이것뿐입니다. 짧은 문장을 정해 어미만 바꿔 붙여 읽어 보세요. "I walk to work / I walked to work", "She needs it / She needed it". 두 문장을 잇달아 읽으면 차이가 귀에 남습니다.
10 — 강세가 어긋나면 단어 자체가 사라집니다
마지막 하나는 개별 소리가 아니라 자리 문제입니다. 소리를 다 맞혀도 강세가 틀리면 못 알아듣는 일이 생깁니다.
vegetable은 "베지터블"이 아닙니다. 앞의 VEG에 힘이 몰리고 뒤는 뭉개집니다. comfortable, chocolate, interesting, temperature도 같은 함정입니다.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전부 한국어 외래어로 이미 굳은 단어입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느끼는 단어일수록 위험합니다.
그래서 새 단어를 만날 때 뜻과 강세를 같이 적어 두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vegetable — 채소 — VEG"처럼요. 나중에 고치는 것보다 처음 만날 때 함께 넣는 편이 훨씬 쌉니다.
이번 주에 고를 항목은 하나면 충분합니다
열 가지를 한꺼번에 손대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한 주에 한 자리만 잡으세요. 순서는 이렇습니다. 오늘 헷갈린 단어 한 쌍을 고르고, 다섯 번 번갈아 읽고, 각각을 짧은 문장에 넣어 다시 읽고("I need rice." / "I found lice."), 녹음해 두었다가 하루 뒤에 들어 봅니다. r과 l을 잡는 주, f와 v를 잡는 주, th를 잡는 주… 이렇게 나가면 두어 달 안에 목록을 한 바퀴 돕니다. 소리 하나가 자리를 잡을 때마다 그 소리가 들어간 단어 수백 개가 함께 정리된다는 점만 기억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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